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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R [창의 주도형 CEO]

자연생각 2017. 8. 31. 12:37


[창의 주도형 CEO]
 

만년 하위권을 맴돌던 어느 프로야구팀이 선수 개개인의 개성을 살려주는 ‘자율야구’를 도입해 우승했다고 치자. 이런 경우 우승팀 감독이나 구단주가 빠지기 쉬운 유혹은 지속해서 자율의식을 고취하는 대신 우승한 시즌의 모든 것을 기록해 ‘매뉴얼화’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율의 타율화’다. 스포츠 세계에서 이 같은 노력의 결과는 끝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비즈니스 세계도 비슷하다. 창의적인 아이템이나 비즈니스 기법으로 큰 성공을 거둔 기업 중 상당수는 끊임없는 혁신의 길을 추구하기보다는 직전의 성공 방식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역시 결과는 이전보다 신통치 않다.

물론 지속적인 혁신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만으로 의미 있는 혁신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 구성원의 아이디어가 의미 있는 사업적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부분에서는 분야를 초월해 ‘지구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조직’으로 불리는 애니메이션 영화 전문 기업 ‘픽사’의 공동창업자이자 회장인 에드 캣멀에게 한 수 배워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머리빌에 있는 픽사 본사 입구. /블룸버그

픽사는 1979년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작자 조지 루카스가 이끄는 루카스필름의 디지털 컴퓨터 관련 기술의 담당 부서로 출발했다. 이후 1986년 당시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1000만달러(약 114억원)에 픽사를 인수하면서 독자적인 기업이 됐다.

1995년 컴퓨터그래픽만으로 만든 최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로 애니메이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픽사는 이후 지난해까지 ‘벅스라이프’ ‘니모를 찾아서’ ‘몬스터주식회사’ ‘인사이드아웃’ 등 18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통해 전 세계에서 총 110억달러(약 12조5000억원)를 긁어모으며 세계 최고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우뚝 섰다. 픽사는 2006년 74억달러(약 8조4000억원)에 디즈니에 인수됐지만, 위상에는 변함이 없다.

최신 기법보다 참신한 이야기가 중요

“우리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통해 감성에 호소한다. 하지만 매번 다른 감성에 호소한다.”

‘창의력의 아이콘’ 캣멀 회장이 2015년 미국 콜로라도주 애스펜에서 열린 학술 행사에서 남긴 유명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픽사를 그저 창의적인 DNA를 타고난 천재들이 모인 곳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자유분방한 복장과 업무 환경을 허락하기만 하면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무한정 샘솟는 것으로 지레짐작한다. 절반만 맞다.

픽사가 세계 최고의 스튜디오인 만큼 수준 높은 인재가 몰리는 것은 맞다. 하지만 픽사 신화를 창조한 주역 중에는 패배의 쓰라린 아픔을 경험한 이들이 많다. 픽사와 디즈니의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인 존 래스터는 사회 초년병 시절 디즈니에 입사했다 해고당한 전력이 있다. ‘인크레더블’과 ‘라따뚜이’를 만든 브래드 버드 감독도 한때 디즈니에 취직했다가 쫓겨났다.

널리 알려진 픽사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기법보다 ‘이야기(story)’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천재 한 사람의 머리에서 완결된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성공한 픽사 애니메이션의 핵심 줄거리는 대부분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태어나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통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이기적인 캐릭터였던 ‘토이스토리’의 주인공인 보안관 인형 ‘우디’가 제작 과정을 통해 친절한 캐릭터로 변신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한마디로 픽사의 창의력은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다. 오늘날의 픽사를 있게 한 캣멀의 다섯가지 원칙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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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캣멀 픽사 회장은 “예술을 담당하는 직원과 기술을 담당하는 직원이 컴퓨터 앞에 온종일 앉아 있을 때보다 우연히 만날 때 창의성이 배가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1 | 공간부터 바꿔라

캘리포니아주 에머리빌에 있는 픽사 본사는 지붕을 유리로 덮은 150m 길이의 기다란 건물이다. 스티브 잡스가 픽사 CEO였던 시절 직접 설계에 참여해 2000년에 세웠다. 그런데 건물의 화장실·회의실·카페·식당이 모두 중앙 로비에 몰려 있고, 사무실은 중앙 로비를 기준으로 좌우에 포진해 있다. 건물의 양쪽 끝에서 중앙으로 걸어오려면 4~5분은 걸린다. 캣멀은 2013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예술을 담당하는 직원과 기술을 담당하는 직원이 우연히 만날 때 컴퓨터 앞에 온종일 앉아 있을 때보다 창의성이 배가된다”며 “전문 분야가 완전히 다른 직원들을 결혼시켜주는 것”과 같다 라고 설명했다. 기술과 예술이 서로 도전하는 픽사의 철학을 건물 디자인에서부터 완벽하게 구현한 셈이다.

2 | 치밀하게 관찰하라

‘벅스라이프’ 제작에 앞서 픽사의 제작진들은 초소형 카메라를 통해 개미들이 다니는 모든 곳을 개미들의 시각에서 관찰했다. 그 결과 줄지어 행군하는 개미들이 뜻밖의 장애물을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개미들의 눈에 보이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력을 보태 실감 나게 스크린에 표현할 수 있었다. ‘니모를 찾아서’ 제작 중에는 주인공 니모가 하수구를 통해 탈출한다는 설정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제작진이 실제로 하수구를 조사하기도 했다. 쥐가 일류 요리사가 되는 설정의 ‘라따뚜이’ 때는 제작진이 파리 최고의 레스토랑들을 돌며 레스토랑의 바닥과 천장 그리고 그 바닥에 쌓인 먼지는 뭔지, 그 형태가 어떻게 생겼는지, 사람들은 뭘 입고, 뭘 먹는지를 전부 사진으로 찍어 작품에 반영했다. 창의적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려면 현실감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것을 캣멀은 잘 알고 있다.

홍콩 디즈니랜드의 퍼레이드에 등장한 픽사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의 메인 캐릭터들. /홍콩 디즈니랜드

3 | 최고 품질에 타협은 없다

픽사는 창작 과정 내내 집요하게 실패의 가능성을 연구해 극복하면서 최고의 작품을 만든다. 1999년 ‘토이스토리 2’ 제작 당시 배급을 맡고 있던 디즈니는 애초 ‘토이스토리 2’를 비디오 영화로 발매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캣멀과 제작진은 극장 개봉을 밀어붙였다. 개봉 일자가 다가오는 가운데, 작품의 완성도가 전작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에 공감한 제작진은 개봉을 9개월 남겨두고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제작하기로 했다. 휴가로 제작에서 빠져 있던 전작 ‘토이스토리’ 감독 존 라세터가 다시 투입됐고, 결국 하루도 쉬지 않고 야근하며 영화를 다시 만들었다. 그 결과 ‘토이스토리 2’는 4억9000만달러(약 5580억원)를 벌어들이며 크게 성공했다.

4 | 조급함은 창의력의 최대 적(敵)

캣멀은 초기 스토리 아이디어를 ‘못생긴 아기(ugly baby)’에 비유한다. 처음부터 완벽한 모습을 기대하지 말고 잠재력을 보고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우리 아가들이 너무 성급히 판단당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을 그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여긴다. 픽사가 한 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 보통 5년 이상이 걸린다. 스토리 크리에이티브팀에 주어지는 기간은 최소 3년이며, 같은 주인공을 두고 완전히 다른 몇 십 개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각각의 버전에서 관객을 즐겁게 할 최고의 이야기를 골라 다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5 | 피드백은 ‘내 입장에서’ 정직하게

픽사에는 ‘두뇌위원회(Brain Trust)’란 기구가 있다. 대표 감독 7~8명이 1년에 3~4차례 모여 현재 진행되는 영화 프로젝트에 대해 비평하는 위원회다. 위원회는 창의력에 질서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더는 가망이 없다고 여겨지는 아이디어는 위원회를 통해 폐기된다. 가능성이 남아 있는 한 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위원회의 모토는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이지만 감정을 배제하고 ‘내 작품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라는 입장에서 피드백을 한다. 디즈니는 픽사 인수 후 두뇌위원회를 벤치마킹해 ‘이야기위원회(Story Trust)’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탄생한 대표적인 작품이 ‘겨울왕국’이다.



Plus Point


텐센트 성공 비결은 ‘모방을 통한 창조’

알리바바와 함께 중국 상장 기업 중 시가총액 1, 2위인 텐센트의 성공 비결은 ‘모방을 통한 창조’다.

텐센트는 마화텅(馬化騰)이 대학 동기인 장즈둥(張志東)과 함께 1998년 창업했다.

마화텅은 당시 세 명의 이스라엘 컴퓨터광이 만든 PC용 인스턴트 메신저 프로그램 ICQ에 푹 빠져 있었다. 1999년 2월 ICQ의 중국어판 모방품인 OICQ(QQ메신저의 옛 이름)를 출시했지만, 단순히 베끼는 데 만족하지 않고 ICQ의 부족한 점을 하나씩 보완하면서 모방 속 창조를 이뤄냈다.

모든 정보를 컴퓨터에 저장해 다른 컴퓨터를 사용하면 이전의 대화 내용이나 친구 목록을 볼 수 없었던 ICQ와 달리 OICQ는 정보를 서버에 저장해 어디서나 쓸 수 있도록 했고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메시지 전송이 가능하게 했다. 새로운 메신저 프로그램들이 등장하면서 ICQ 사용자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반대로 QQ 사용자는 급증했다.

중국판 카카오톡이라 할 수 있는 위챗(WeChat)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성장했다. 텐센트가 미국의 왓츠앱과 한국의 카카오톡을 참고해 2011년 초 내놓은 위챗의 지난해 말 기준 월간 이용자 수는 8억8900만 명에 달했다.

마화텅 텐센트 창업자가 중국 선전의 텐센트 본사에 있는 펭귄 마스코트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텐센트

마화텅은 어마어마한 사용자 수야말로 인터넷 사업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걸 확신했다. 그는 1등 메신저 회사에 안주하지 않고 포털사이트, 뉴스, 메일, 블로그, 게임, 전자상거래, 엔터테인먼트, 금융, 간편결제, 바이러스 백신, 온라인 교육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텐센트는 전 세계 최대 게임 업체이기도 하다. 2003년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텐센트는 국내 게임 개발사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중소기업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2003년 한국의 3D 온라인 게임 ‘세피로스’수입을 시작으로 사업을 시작한 텐센트는 한국에서 수입한 ‘던전 앤 파이터’ ‘크로스 파이어’의 엄청난 성공으로 온라인 게임 업계의 최강자로 올라섰다.

한편 최근들어 텐센트의 주가가 연일 치솟으면서 마 회장은 마윈 알리바바 회장을 제치고 중국 최고 부호 자리에 올랐다.

올 초까지도 190홍콩달러(약 2만7700원) 수준이었던 텐센트 주가는 8일(현지시각) 기준 연초 대비 70% 이상 치솟은 상태다. 봉황망 등 중화권 매체에 따르면 텐센트가 시가총액 세계 8위에 오르면서 마화텅 회장의 총자산은 362억달러(약 41조3000억원)에 달해 356억달러인 마윈 회장을 넘어섰다.

텐센트 주가의 초강세는 QQ와 위챗 등 텐센트가 운영하는 소셜미디어와 제3자 결제 서비스인 위챗페이, 최근 게임시장에서 폭발적 관심을 받고 있는 모바일게임 ‘영광의 왕(왕자영요)’ 등이 고르게 인기를 얻고 있는 덕택이다. 특히 모바일게임 실적 호조로 텐센트는 올 1분기 매출이 전년동기 대비 55% 급증한 495억5,200만위안(약 8조4700억원), 순익도 58% 늘어난 144억7,600만위안을 기록하는 등 실적에 날개를 달았다.

<본 기사는 이코노미조선 213호에서 발췌했습니다.>

[IF] 니모처럼… 도리도 사라지면 어쩌지
"'꿈의 직장' 디즈니 왜 버렸냐고? 내 마지막 커리어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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