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대웅전 벽화

2010. 12. 16. 21:03☞한국의 사찰/서울 봉은사(삼성동)

 

 

대웅전 외벽에 상, 하단으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상단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의 팔상성도(八相成道)가 그려져 있고, 하단에는 십우도(十牛圖)의 10개의 그림 중 8개만 그려져 있다.

 

1.팔상성도(八相成道)

“팔상성도”는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인간세계에 오시는 것부터 열반에 드시는 것까지의 일대기를 8개의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팔상성도”라 한다. 봉은사 대웅전 벽화에 그려져 있는 팔상성도의 제목을 보면 태몽, 탄생, 사문유람, 출가, 설산수도, 항마상, 녹야원설법, 열반으로 되어 있다.

①태몽(胎夢) 

 첫째, 태몽인데, 보통은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이라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전생은 도솔천에 호명이라는 이름으로 보살로 계셨다. 우리 인간이 사는 세계에 와서 인간들을 제도할 때가 되어 흰 코끼리를 타고 마야부인의 태중에 들어가는 것이 도솔래의상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마야부인(고대인도 가필라국 정반왕의 부인)은 달밤에 산책하다가 난간을 의지하여 잠깐 졸았는데, 한 보살이 둥근 광명 중에 흰 코끼리를 타고 왼 손에는 연꽃을 들고 오른 손에는 백옥으로 만든 홀(笏)을 들고 표연히 내리는데, 수 많은 보살이 전후좌우에 시위하였다. 이때 코끼리에서 내린 보살이 마야부인에게 합장배례하면서 소자는 도솔천 내원궁에 있는 호명보살입니다. 다생인연으로 하계에 내려올 시기가 되어 부인 복중에 잉태하오니 어여삐 여기소서하며 마야부인의 오른쪽 갈비를 헤치고 들어왔다. 이것이 석가모니부처님을 잉태하는 태몽이다. 호명보살이 마야부인의 태중에 있었기 때문에, 그 태가 천상계의 사람들은 모두 큰 궁전으로 보였다. 이리하여 호명보살이 마야부인의 태중에 있어면서도, 오전에는 색계 18천의 사람들을 위하여 법문하고, 정오에는 욕계 6천의 사람들을 위하여 법문하고, 저녁에는 귀신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였다. 이때 도솔천에 있는 한 무리들이 서로 의논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여러 백년을 도솔천에 있으면서 호명보살을 모시고 무상법문을 들어 삼계윤회를 벗어나려고 하였는데 호명보살이 인간세계에 하강하여 부처를 이루어 법을 전할 것이니 우리들도 즐거움만 탐착하지 말고 인간으로 태어나 부처님을 도와 중생제도를 하면서 부처님의 묘한 법문을 들으리라?하였다. 이리하여 이 무리들이 하계에 내려오니 모든 나라의 왕비의 태중에 혹은 재상의 집, 바라문의 집 등에 일시에 입태하니 그 수가 구십구억이라 하며, 그때에 시방세계가 진동하고 광명이 대천세계에 비추었으며 맑은 향기가 공중에 가득했다고 한다.

②탄생(誕生)

 둘째, 탄생인데, 보통은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이라 한다. 부처님을 잉태한 마야부인이 출산할 날이 다가오자 당시의 전통대로 마야부인의 친정인 대와다따로 가던 도중 룸비니 동산에서 부처님을 출산했다. 룸비니 동산은 사라나무로 우거진 숲이라 하며, 매우 아름답다고 한다. 그 동산은 사라나무 숲에 가득 피어있는 꽃나무 사이사이에 너무나 황홀하고도 고운 소리를 내는 새소리와 향기가 가득한 꽃들 사이로 꿀벌들이 윙윙거리며 내는 잔치소리 등이 마치 천인들이 즐기는 난다와나 동산과도 같았다고 한다. 훗날 아쇼카왕이 여기에 탑과 석주(石柱)를 세웠는데, 1,896년 그 석주가 발견되고 비문이 해독되어 이곳이 부처님의 탄생지임이 확인 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 아름다운 동산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로부터 태어났다고 한다. 이때 욕계천인과 색계천인들이 아기 부처님을 받았는데, 온 우주가 진동하고 32가지 특별하고 놀라운 징조들이 한꺼번에 나타났다고 한다. 부처님은 태어나자 곧 바로 4방, 4간방, 상하로 10방향을 향해서 차례대로 보고는 자기와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북쪽을 향하여 일곱 걸음을 걷고 다음과 같은 말을 사자후 하였다고 하였는데, 두 가지가 전해오고 있다.

남방불교에서는 ?내가 삼계에서 가장 높다. 내가 삼계에서 가장 크다. 내가 삼계에서 으뜸가는 칭송 받는 자다. 지금의 입태가 나에게 마지막 입태이다. 이후로 나에게 다시 새로운 생에 태어남은 없다.?라 하고, 북방불교에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 하늘 위 하늘아래 오직 내가 존귀하다. 삼계는 모두 고통의 세계이니 내가 응당 고통을 없애어 편안하게 하리라.?라 한다.

출생한 부처님은 사캬족으로 출가하기전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Śiddhārtha)”이다. 고타마는 “최상의 소”라는 뜻이고, 싯다르타는 “모든 것을 성취한 또는 미덕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사캬족은 네팔과 인도의 국경부근에 거주하고 있던 작은 부족이었다고 한다. 수도는 카필라바스투인데 이 수도 이름은 따서 부처님께서 태어난 나라를 카필라국이라 한다. 사캬족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아버지는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으로서 수장의 한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마야(Māyā)부인은 부처님을 낳은 후 7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마야부인의 동생 고타미(Mahāpajāpatī-Gotamī, 大愛道瞿曇彌)가 양모가 되어 부처님을 양육했다. 전설에 부처님이 태어났을 때 히말라야산으로부터 아시타(Asita)라는 선인(仙人)이 와서 왕자를 보고 ?이 아이의 앞날에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왕위를 계승하면 전 세계를 통일하는 전륜성왕이 될 것이고, 만일 출가하면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 하였다 한다.

부처님의 출생연도에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623년에 출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입멸(入滅)연도는 기원전 544년이라 한다.

사문유람(四門遊覽)

 
 셋째, 사문유람인데, 보통은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이라 한다. 부처님은 출가하기 전에는 부러울 것 없는 풍족한 생활을 하였다. 아쇼다라(Yaśodhrā)와 결혼해서 아들 라훌라(Rā⃑hula)를 낳았다. 부처님은 어렸을 때부터 명상을 하는 성격을 가졌다. 어느 날 농경제(農耕祭)를 지내기 위해 부왕(父王)을 따라 야외로 나갔을 때에도 사람들을 피해 나무 밑에서 좌선을 하여 초선(初禪)의 경지에 들었다 한다. 또 어느 날 농부가 일구어 놓은 땅속에 있는 벌레를 새가 날아와 물고 사라져 버렸다. 이를 본 부처님은 생명체가 생명체를 해치는 고통(苦痛)을 통감했다. 부처님은 어느 누구도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피할 수 없고,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하여 매우 심각하게 골몰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흔히 말하는 사문(四門)을 유관하고는 출가하였는데, 그때의 나이가 29세였다. 먼저 가필라성 동문에서 늙은이를 보고 모든 사람이 늙어간다는 것을 깨닫고, 남문에서는 병들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병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서문에서는 죽은 사람을 보고 모든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북문에서는 계를 지키며 수행하는 사문을 보고 늙어서 병들어 죽는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출가하여 수행 이외에는 없음을 깨닫는다.

④출가(出家)

 

 넷째, 출가인데, 보통은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이라 한다. 사문을 돌아본 부처님은 출가할 결심을 한다. 29세가 되던 해 부처님은 마침내 출가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부처님의 출가를 돕기 위해 범천왕과 제석천왕 및 사천왕(四天王) 등이 서로 협력하여 각각 그 신통력으로 외부의 군중(軍衆)과 궁내의 모든 궁녀를 모두 잠들게 하였으며, 그 아름다운 궁녀의 자는 모습들이 오히려 시체(屍體)로 보이게 하고, 화려하던 궁전도 오히려 무덤처럼 보이게 하였다고 한다. 출가하려고 뜻을 품었던 부처님은 그 날 밤에 출가를 하였는데, 그에 앞서 아들 라훌라에게만 고별을 하고자 하여 태자비인 아쇼다라와 라훌라가 잠이든 침실에 몰래 들어갔다. 이는 인간 부처님의 순정의 일면을 볼 수 있는 것인데, 이 세상의 아무 것도 모르고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에서 조용히 잠든 라훌라에게 무언(無言)의 고별을 하였다. 그리고 침실을 나온 후 태자는 애마 칸타카를 타고 마부 챤나(Channa)를 따라 성을 나왔다고 한다. 대반열반경(大槃涅槃經)에는 “부처님께서는 절대선(絶對善, kusala)을 구하여 출가 했다”고 전한다.

⑤설산수도(雪山修道)

 다섯 째, 설산수도인데, 보통은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이라 한다. 출가한 부처님은 훌륭한 사문(출가하여 수행하는 사람을 일컬음)들이 많이 있는 남쪽의 신흥국가 마가다로 향했다. 한때 부처님이 왕사성에서 걸식하고 있을 때 빔비사라왕이 그를 보고 자기의 신하로 삼고자 하여 출가를 단념시키려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부처님은 알라라 칼라마(Alāla-kālāma)에게서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을 증득했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으며, 웃다카 라마풋타(Uddaka-Rāmaputta)에게서 “비상비비상처(非相非非相處)”의 선정을 증득했지만, 선정에서 나오면 다시 일상의 마음으로 돌아오므로 여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숲으로 들어가 혼자 수행하기로 하여 마가다국 우루벨라의 세나마을을 흐르는 네란자라강 부근에서 고행을 실천했다고 한다. 이곳이 바로 “고행림(苦行林)”이다. 그 고행은 6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고행으로 올바른 진리를 얻을 수 없었다. 그때 일찍이 어린 시절 농경제를 지내기 위해 부왕을 따라 외출하여 나무 밑에서 좌선하여 초선에 든 것을 생각해냈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bodhi, 覺)”에 이르는 길일 것이라 생각하여 고행을 포기 했다고 한다.

⑥항마상(降魔相)

 여섯 째, 항마상인데, 보통은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이라 한다. 부처님은 고행으로 지친 몸으로는 올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질긴 음식과 우유죽으로 몸을 보강했다. 이때 우유죽을 바친 사람은 수쟈타(Sujātā)라는 처녀였다. 이른 본 함께 고행을 하던 5명의 수행자들은 “사문 고타마는 타락하여 고행을 포기했다”하면서 떠나버렸다. 부처님은 질긴 음식과 우유죽으로 체력을 보강하고 근처의 숲으로가 아슈바타(aśvattha)나무아래에 자리를 잡고 선정에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각”을 이루어 부처(불타라고도 함)가 되었다. 이때 부처님의 나이는 35세였다. 부처(불타)의 의미는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아슈바타나무도 원래는 무화과나무의 일종인데 나중에는 “보리수(Bodhi-tree)”라고불리게 되었으며, 그 장소는 “부다가야(Buddhagayā)”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이에 대하여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사제(四諦)를 깨달았다는 설, 십이연기(十二緣起)를 깨달았다는 설, 사선삼명(四禪三明)을 통해 깨달았다는 설 등이 있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후 나무 밑에서 명상하고 있을 때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고 한다. “존경하는 것이 없고 공경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고(苦)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나보다 계(戒), 정(定), 혜(慧), 해탈(解脫), 해탈지견(解脫知見)을 완전히 갖추고 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으므로 나는 차라리 내가 깨달은 法을 존경하고 공경하면서 살리라”하고 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깨달은 것은 法인데, 그 법의 구체적 내용이 45년간 설한 근본경전에 나타나는 것이며, 그 핵심은 연기(緣起)이다.

⑦녹야원설법(鹿野苑說法)

 
 일곱 째, 녹야원설법인데, 보통은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이라 한다. 부처님은 깨달은 후 7일 동안 보리수 밑에서 깊은 삼매에 들어 있었으며, 그 후 다른 나무 밑에서 해탈의 기쁨을 맛보며 앉아 있었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 “타풋사와 발리카”라는 두 명의 상인이 부처님에게 밀환(蜜丸)을 공양하고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부처님은 자신이 깨달은 “법(dharma)”이 매우 심오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설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설법하기를 주저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생제도의 마음을 일으켜 “이타(利他)”의 활동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이는 범천왕의 권청으로 중생제도의 마음을 일으켰다는 신화가 있다.

어쨌든 부처님은 법을 설하기로 결심하고 우선 누구에게 설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고행하던 시절 함께 수행했던 5명의 수행자에게 먼저 설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베나레스(Bā⃑rānasi)의 녹야원(Migadāya)으로 향했다. 녹야원은 현재 사르나트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四聖諦)를 설했는데, 이것이 초전법륜(初轉法輪)이다. 그 5다섯 비구 중 최초로 법을 깨달은 사람은 교진여이다. 그 후 나머지 네 사람도 깨달아 아라한이 되었다. 이리하여 다섯 명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이로서 교단(僧伽, samgha)이 성립되었다.

⑧열반(涅槃)

 
 여덟 째, 열반인데, 보통은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이라 한다. 부처님은 녹야원에서 처음 법을 설한 후 45년간 잠시도 쉬지 않고 전인도에 법을 설하며 다녔다. 그리하여 80세 되는 해 파바(Pa⃑vā)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서 대장장이 춘다(Cunda)의 공양을 받아먹고 병에 걸려 출혈과 이질로 몹시 고생했다고 한다. 이때 부처님이 먹은 것은 수카라맛다바라 하는데, 버섯의 일종이라고도 한다. 그 후 부처님은 병에 시달리면서 유행을 계속하여 쿠시나가라(Kusinagari)에 이르러 사라나무 아래서 마침내 반열반(般涅槃, parinirvāna)에 들었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입멸에 앞서 여러 가지 유언을 남겼다 한다. ① 먼저 교단의 장래에 대해서 “승가는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나는 내외의 구별 없이 법을 설했다. 여래의 교법에는 제자에게 감추려는 듯한 은밀한 구석은 없다”고 설하여 비록 부처님이라도 비구승가의 지배자가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하였다. ②수행의 면에서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을 귀의처로 삼으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으라”하고, 부처님 자신이 죽은 후 출가의 제자들은 부처님의 유신(遺身, śarira, 사리)에 정신을 팔지 말고 “최고선(最高善, sadattha)”의 추구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였고, 부처님이 죽은 후에 “교주의 말씀은 끝났다. 우리들의 교주는 이제 안 계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에 의해 설해진 교법(dharma)과 계율(vinaya)이 내가 죽은 후 너희들의 스승이다”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그리고 최후로 임종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없는가?”라고 3번 반복해서 물었다.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없자, “모든 존재하는 것은 멸하는 성질이 있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고 설하고는 깊은 선정에 들어가 열반하였다고 한다.

부처님의 유해는 부처님의 유언대로 쿠시나가라의 말라족에 의해 장례가 치루어졌다. 다비후 수습한 사리는 중인도의 8부족에게 분배되어 각각 사리탑이 세워졌는데, 이 사리탑을 스투파(stūpa)라 한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사리탑은 석존을 사모하는 사람들에 의해 예배되고, 불탑신앙이 생겨났다.

2.십우도(十牛圖)

“십우도(十牛圖)는 선종(禪宗)에서 자기의 본심을 발견하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순서를 소에 비유해 10단계를 나타낸 것이다. 본심(本心)을 소에 비유했기 때문에 십우도로 하며, 때로는 본심을 찾는다는 것에서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한다. 중국 송나라 때 곽암사원(廓庵師遠)스님의 십우도송에 잘 나타나 있다. 봉은사 대웅전에는 10단계의 십우도 중에서 제8단계까지의 벽화만 있다.

10단계는 ①심우(尋牛), ②견적(見跡), ③견우(見牛), ④득우(得牛), ⑤목우(牧牛), ⑥기우귀가(騎牛歸家), ⑦망우존인(忘牛存人), ⑧인우구망(人牛俱忘) 또는 일원상(一圓相), ⑨반본환원(返本還源), ⑩입전수수(入廛垂手)이다.

①심우(尋牛):소를 찾아 나서다.

 
 동자승이 소를 찾고 있는 장면이다. 즉 자기의 본심인 소를 찾아 헤매는 것인데, 불법(佛法) 수행의 입문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서문

從來不失 何用追尋(종래불실 하용추심)

애초에 잃어버린 것이 아닌데, 무엇을 쫒아가며 찾을 것인가?

由背覺以成疎 在向塵而遂失(유배각이성소 재향진이수실)

깨달음을 등져서 멀어져 세간을 향하다가 마침내 본심을 잃었네.

家山漸遠岐路俄差(가산점원기로아차)

고향집에서 점차 멀어져 갈림길에서 어긋났다.

得失熾然是非鋒起(득실치연시비봉기)

얻고 잃음의 불이 일어나니, 옳고 그름의 분별도 날카롭게 일어나네.

게송

茫茫撥草去追尋(망망발초고추심) 아득히 펼쳐진 수풀을 헤치고 소 찾아 나서니

水闊山遙路更深(수활산요로갱심) 물을 넓고 산은 먼데 길은 더욱 깊도다.

力盡神疲無處覓(역진신피무처멱) 힘 빠지고 피로한데 소 찾을 길은 없고

但聞楓樹晩蟬吟(다문풍수만선음) 다만 저녁의 단풍나무에 매미 울음만 들리네.

②견적(見跡):소의 자취를 발견하다.

 
 동자승이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가는 장면이다. 수행자가 꾸준히 수행하다보면 본심의 자취를 느끼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依經解義(의경해의) 경전에 의거해 뜻을 헤아리고,

閱敎知踪(열교지종) 가르침을 배워서 그 자취를 안다.

明衆器爲一金(명중기위일금) 모든 그릇이 다 한가지로 금임을 밝히고,

體萬物爲自己(체만물위자기) 우주만물의 체가 자기인데,

正邪不辨(정사불변) 바름과 삿됨을 가려내지 못한다면,

眞僞奚分(진위해분) 참됨과 거짓을 어찌 구분할 수 있으리오.

未入斯門(미입사문) 아직 이 문에 들어가지 않았으나

權爲見跡(권위견적) 방편으로 자취를 본다고 한다.

게송

水邊林下跡偏多(수변림하적편다) 물가 나무아래 발자국이 어지럽게 많으니

芳草離披見也麽(방초리피견야마) 방초를 헤치고 보는가 못 보는가?

縱是深山更深處(종시심산갱심처) 이 깊은 산에 이어 다시 깊은 곳이 있어도

遼天鼻孔怎藏他(요천비공즘장타) 하늘 향한 코를 어찌 숨기리.

③견우(見牛):소를 보다.

 동자승이 소의 뒷모습을 발견하는 장면이다. 수행자가 사물의 본체를 보기 시작하여 깨달음에 가까워졌음을 뜻하는 그림이다.

從聲得入(종성득입) 소리를 쫓아 들어가니,

見處逢源(견처봉원) 보는 곳마다 근원과 마주친다.

六根門(육근문) 여섯 기관의 문이

着着無差(착착무차) 한 치의 어긋남이 없네.

動用中(동용중) 움직이는 작용 속에

頭頭顯露(두두현로) 낱낱이 바탕을 드러냈다.

水中鹽味(수중염미) 물속의 소금 맛이요.

色裏膠靑(색리교청) 물감속의 아교인데,

眨上眉毛(잡상미모) 눈썹을 치켜뜨고 바라봐도,

非是他物(비시타물) 별다른 물건이 아니네.

게송

黃鶯枝上一聲聲(황앵지상일성성) 노란 꾀꼬리 가지위에서 지저귀고,

日暖風和岸柳靑(일난풍화안유청) 햇볕은 따뜻하고 바람은 부드럽고 언덕에는 푸른 버들,

只此更無廻避處(지차갱무회피처)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곳에

森森頭角畵難成(삼삼두각화난성) 삼삼한 소뿔 그리기 어려워라.

④득우(得牛):소를 얻다.

 

 동자승이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아 막 고삐를 건 장면이다. 수행자가 자신의 마음에 있는 본성(또는 佛性)을 보아 견성(見性)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서문

久埋郊外(구매교외) 오랫동안 야외에 숨어 있더니,

今日逢渠(금일봉거) 오늘에야 비로소 그댈 만났네.

由境勝以難追(유경승이난추) 뛰어난 경치 때문에 쫓아가기 어려운데,

戀芳叢而不己(연방총이불기) 싱그러운 숲 속을 끊임없이 그리워하네,

頑心尙勇(완심상용) 완고한 마음 여전히 날뛰니,

野性猶存(야성유존) 야성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

欲得純和(욕득순화) 순화하게 하고자하면,

必加鞭撻(필가편달) 반드시 채찍질을 하여야 하네.

게송

竭盡精神獲得渠(갈진정신획득거) 온 정신을 다하여 이놈을 잡았는데,

心强力壯卒難除(심강력장졸난제) 마음이 강하고 힘이 세 다스리기 어렵다.

有時纔到高原上(유시재도고원상) 어떤 때는 고원위에 겨우 올랐다가

又入烟雲深處居(우입연운심처거) 또 구름 깊은 곳에 들어가 머무는구나.

⑤목우(牧牛):소를 기르다.



 동자승이 소에 코뚜레를 뚫어 길들이며 끌고 가는 장면이다. 수행자가 얻은 본성을 고행과 수행으로 길들여서 업장을 소멸하는 단계로 소가 점점 흰색으로 변한다.

서문

前思纔起後念相隨(전사재기후념상수) 앞생각이 바로 일어나자 뒷생각이 따르니.

由覺故以成眞(유각고이성진) 깨달음으로 인해 진실을 이루기도 하며,

在迷故而爲妄(재미고이위망) 미혹이 있기 때문에 거짓이 된다.

不由境有(불유경유) 대상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 아니라,

唯自心生(유자심생) 오직 스스로 마음이 일으킨 것이다.

鼻索牢牽不容擬議(비삭뇌견불용의의) 코를 꿴 고삐를 당길 뿐 사량분별을 용납지 않는다.

게송

鞭索時時不離身(편삭시시불리신) 채찍과 고삐를 항상 몸에서 떼지 말라.

恐伊縱步入埃塵(공이종보입애진) 두렵다. 멋대로 걸어서 티끌세계에 들어 갈까봐.

相將牧得純和也(상장목득순화야) 장차 잘 길들여서 온순하게 되면,

羈鎖無拘自逐人(기쇄무구자축인) 고삐를 잡지 않아도 저절로 사람을 따를 것이다.

⑥기우귀가(騎牛歸家):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흰 소를 타고 동자승이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장면이다. 더 이상 아무런 장애가 없는 무애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서문

干戈已罷得失還無(간과이파득실환무) 투쟁이 끝나 무기를 버리니 얻음도 없고 잃음도 없도다.

唱樵子之村歌(창추자지촌가) 나무꾼의 시골 노래 흥얼거리며,

吹兒童之野笛(취아동지야적) 시골아이의 풀피리 불어 보노라.

身橫牛上目視雲霄(신횡우상목시운소) 소등에 누워서 눈은 구름과 하늘을 바라본다.

呼喚不回撈籠不住(호환불회로룡부주) 부르고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끌어당겨도 더 이상 머물지 않는다.

게송

騎牛邐欲還家(기우이리욕환가) 소를 타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가노니.

羗笛聲聲送晩霞(강적성성송만하) 오랑캐 피리소리가 저녁놀에 실려 간다.

一拍一歌無限意(일박일가무한의) 한 박자 한 곡조가 한량없는 뜻이니.

知音何必鼓脣牙(지음하필고순아) 음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⑦망우존인(忘牛存人):소는 잊고 사람만 있다.

 

 소는 없고 동자승만 집에 않아 있는 장면이다. 소는 단지 임시로 의탁한 방편일 뿐 실체는 아니니 고향에 돌아온 후에는 모두 잊어야 한다는 뜻이다.

서문

法無二法(법무이법) 법(진리)에는 두 법(진리)이 없나니,

牛且爲宗(우차위종) 임시로 소에 의탁해 종으로 삼았노라.

喩蹄兎之異名(유제토지이명) 올가미와 토끼가 명칭이 다른 것과 같고,

顯筌魚之差別(현전어지차별) 통발과 물고기가 구별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如金出鑛似月離雲(여금출광사월이운) 마치 금이 광석에서 나오고, 달이 구름은 벗어난 것 같으니

一道寒光威音劫外(일도한광위음겁외) 한 줄기 차가운 빛은 겁 밖의 위음이로다.

게송

騎牛已得到家山(기우이득도가산) 소를 타고 이미 고향에 도착하였으니,

牛也空兮人也閑(우야공혜인야한) 소 또한 공하고 사람까지 한가롭네.

紅日三竿猶作夢(홍일삼간유작몽) 붉은 해 높이 솟아도 여전히 꿈꾸는 것 같으니,

鞭繩空頓草堂間(편승공돈초당간) 채찍과 고삐는 초가집 사이에 부질없이 놓여있네.

⑧인우구망(人牛俱忘):사람도 소도 다 잊다.

 

  소도 사람도 없는 둥근 원상만 그려져 있는 장면이다. 소도 사람도 실체가 없는 모두 공(空)임을 깨닫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텅 빈 일원상(一圓相)만 그려져 있다.

서문

凡情脫落聖意皆空(범정탈락성의개공) 범속한 생각 탈락하고 거룩한 뜻도 모두 비어 있다.

有佛處不用遨遊(유불처불용오유) 부처가 있는 세계에는 놀 필요가 없고,

無佛處急須走過(무불처급수주과) 부처가 없는 세계에는 모름지기 급히 지나가야 한다.

兩頭不着(양두불착) 범속함(凡)과 거룩함(聖) 둘 다 집착하지 않으니,

天眼難窺(천안난규) 관세음보살의 천안이라도 엿보기 어렵도다.

百鳥含花(백조함화) 온갖 새들이 꽃을 물고와 공양하는 것은

一場麽羅(일장마라) 오히려 한 바탕 부끄러운 장면일 뿐이네.

게송

鞭索人牛盡屬空(편삭인우진속공) 채찍, 고삐, 사람과 소 모두 비어 있으니,

碧天遼闊信難通(벽천요활신난통) 푸른 허공만 아득히 펼쳐져 소식 전하기 어렵도다.

紅爐焰上爭容雪(홍로염상쟁용설) 붉은 화로의 불꽃이 어찌 눈을 용납하리오.

到此方能合祖宗(도차방능합조종) 이 경지에 이르러야 조사, 종사의 마음과 합치게 되리.

⑨반본환원(返本還源):근원으로 돌아가다.

 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붉게 피어 있는 산수풍경만이 그려져 있는 장면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깨닫는다는 것으로 법계를 아무런 번뇌 없이 참된 경지에서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서문

本來淸淨不受一塵(본래청정불수일진) 본래 청정하여 한 티끌에도 물들지 않으면서,

觀有相之榮枯(관유상지영고) 상이 있는 것들의 영고성쇠를 본다.

處無爲之凝寂(처무위지응적) 무위의 응연하고 고요한 경지에 머물러,

不同幻化(부동환화) 환화와 동일시하지 않으니,

豈假修治(기가수치) 어찌 수행과 계율에 의지하리오.

水綠山靑(수록산청) 물은 맑고 산은 푸른데,

坐觀成敗(좌관성패) 앉아서 세상의 흥망성쇠를 바라보노라.

게송

返本還源已費功(반본환원이비공) 근원으로 돌아가 보니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니

爭如直下若盲聾(쟁여직하약맹롱) 차라리 마치 귀머거리나 장님과 같았네.

庵中不見庵前物(암중불견암전물) 암자 속에 않자 암자 밖 사물을 보지 않나니.

水自茫茫花自紅(수자망망화자홍) 물은 저절로 아득하고 꽃은 저절로 붉구나.

⑩입전수수(入廛垂手):저자에 들어가 손을 드리우다.

 
지팡이에 도포를 두른 행각승의 모습으로 마을로 내려가는 장면 또는 목동이 포대화상과 마주한 모습이 그려져 있는 장면이다. 육도에 윤회하는 세계에 들어가 손을 드리운다는 뜻으로 중생제도를 위해 세속으로 나아감을 뜻한다.

서문

柴門獨掩(시문독엄) 싸리문 닫고 홀로 고요하니.

千聖不知(천성부지) 천 명의 성인이라도 알지 못하네.

埋自己之風光(매자기지풍광) 자기의 풍광을 묻어 버리고,

不前賢之途轍(부전현지도철) 예 현인의 길과 흔적도 등지고

提瓢入市(제표입시) 표주박을 들고 저자에 들어가며,

策杖還家(책장환가) 지팡이를 짚고 집으로 돌아간다.

酒肆魚行(주사어행) 술집도 가고 고기간도 가서,

化令成佛(화령성불) 교화를 하여 부처를 이루게 한다.

게송

露胸跣足入廛來(로홍선족입전래) 가슴을 들어내고 맨발로 저자에 들오오니,

抹土途灰笑滿腮(말토도회소만시) 재가루 흙투성이라도 얼굴엔 함박웃음 머금고,

不用神仙眞秘訣(불용신선진비결) 신선의 참된 비법을 쓰지 않아도,

直敎枯木放花開(직교고목방화개) 곧바로 마른 나무에 꽃을 피게 하는구나!

 

(봉은사 홈피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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