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7.24 11:57
[Weekly BIZ: 후지타 다카노리 ‘2020 하류 노인이 온다’ 저자·비영리단체 훗토플러스 대표]
그는 평범한 일본의 은행원이었다. 남들이 아는 대학을 나와 상장된 시중은행에 취직했다. 결혼 적령기에 선으로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딸을 하나 낳아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 아내는 전업주부로 평생을 내조했다.

평범한 샐러리맨 출신들이
퇴직 후 한순간에 추락
유지비 없어 버려지는 집
전체의 13% 달해
계획대로 진행되던 그의 삶이 틀어지기 시작한 건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인한 미국발(發) 금융 위기 때부터였다. 그가 다니던 은행은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그는 예정보다 2년 이른 63세에 퇴직했다.
퇴직금으로 받은 돈은 3000만엔(약 3억2000만원), 65세부터 받을 수 있는 연금도 매월 24만엔(약 258만원)이었다. 현금 예금도 4000만엔(약 4억3000만원) 정도에 사이타마(埼玉)에는 융자를 다 갚은 번듯한 집도 있었다. 안정된 노후를 보내기에 부족하진 않았다.
하지만 일상은 생각보다 빨리 무너졌다. 그는 평생 다니던 회사에서 버림받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짜증이 늘었다. 짜증을 풀 상대는 아내밖에 없었다. 평생을 참아 왔던 아내는 이번에는 참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혼했고 집과 연금, 예금 등의 전 재산은 둘로 분할됐다.
큰 집을 나와 아무도 없는 조그만 월세 아파트로 이사한 그는 건강도 악화됐다. 치매를 앓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도 발병했다. 결국 그는 작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혼자 죽은 상태로 발견됐다. 집세가 밀리자 항의하러 온 집주인을 통해서였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그는 ‘2020 하류 노인이 온다(국내 제목)’의 저자 후지타 다카노리(藤田孝典·34) NPO(비영리단체) 훗토플러스 대표가 만난 사람 중 한 명이다. 후지타 대표는 지난해 일본에서 ‘하류 노인’을 출간하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다. 이 책은 일본에서 1년 만에 20만5000부가 판매됐다.
그가 제기한 ‘하류 노인’이란 문제점은 한국·일본·중국 등이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중국은 과거의 산아 제한 정책으로 발생할 하류 노인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일본 도쿄(東京)에서 기차로 한 시간 떨어진 사이타마현 훗토플러스 사무실에서 후지타 대표를 만났다.
―하류 노인이라는 단어를 만드셨습니다.
“저는 대학 때부터 도쿄 히비야(日比谷)공원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배급 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히비야공원에는 배급받는 분들이 500명 넘게 늘어났습니다. 노숙자도 급증해 ‘해넘이 파견촌(직장에서 해고돼 노숙자가 된 노동자들을 위한 임시 집단 거주촌)’도 생겼습니다. 더 놀라웠던 건 그들이 대부분 4년제 대학을 나와 상장 기업에 다니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중에는 대기업 직원, 은행원, 심지어 공무원도 있었습니다. 원래 ‘하류 노인’이라는 단어는 인터넷에도 없었던 단어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 이렇다면 일본 고령층 대부분은 ‘하류’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런 단어를 썼습니다.”

―잘나가던 직장인이 한순간에 추락한다는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과거 고령층 중 빈곤에 빠지는 사람들은 일용직 건설 노동자 등 특정 업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2008년 리먼 쇼크로 확 바뀌었습니다. 리먼 쇼크와 1947~1949년에 태어난 일본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의 은퇴가 맞물렸기 때문입니다. 단카이 세대들이 리먼 쇼크로 회사에서 쫓겨나던 나이는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입니다. 이들의 부모들은 대부분 생존해 계시지만 한두 가지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상보다 예금이 별로 없습니다. 자녀 교육에 열의를 보인 세대라 교육비 지출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들의 자녀는 흔히 말하는 취업 빙하기 1세대(30~40대)입니다. 취직을 못 했거나 아르바이트·비정규직으로 생활을 연명합니다. 결국 3대의 주요 수입원이 은퇴한 남편이 모아둔 돈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한 명이 암이나 치매에만 걸려도, 작은 사기만 당해도 한순간에 삶은 무너집니다.”
―일본은 고령층에 대한 복지 체제가 잘돼 있지 않나요.
“일본의 복지 체제는 나라보다는 직장과 가정에 의지하는 측면이 큽니다. 직장에서 상당수의 의료비를 내주고, 간호는 가족이 하는 형태입니다. 하지만 리먼 쇼크 이후 기업들은 직원들을 예전만큼 보호해주지 못합니다. 간호를 가족이 해야 하다 보니 부양가족이 많이 없는 경우에는 회사를 그만두거나 비정규직으로 이직하고 부모를 모십니다. 이 경우에도 함께 하류로 추락합니다. 잘나가던 사람이 한순간에 회사를 그만두고 질병 등으로 추락하는 경우 이들은 주변에 손을 내미는 것도 잘 못합니다.

프랑스처럼 국가가 나서야
버려지는 빈집 매입해
빈곤층에 싼값 임대
개인생활의 다운사이징
노후 연금 액수 살펴보고
금액 맞춰 정년 준비해야
대부분은 상담받으러 와서 사과부터 합니다. ‘제 삶을 스스로 추스르지 못해 죄송하지만, 절 도와주실 방법이 없으신가요’라고요. 가난이 본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는 ‘어리광(甘え)’을 죄악시하는 일본 특유의 분위기도 작용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책합니다. 이런 성향은 중·장년 시절 잘나갔던 사람들일수록 강합니다.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생활 보호 대상자 포착률(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 제도를 이용하는 비율)은 15~30%에 불과합니다. 반면 독일은 64.6%, 프랑스는 91.6%에 달합니다. 유럽에서는 사회보장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어리광이 아닌 권리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청년층의 실업률은 꽤 많이 낮아진 것 아닌가요.
“실업률이 감소하긴 했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가 증가한 것은 아닙니다. 리먼 쇼크 이후 일본에서는 ‘블랙 기업’이라는 말이 탄생했습니다. 직원들에게 돈도 제대로 주지 않고 착취하는 기업을 말하는 것이지요. 취직을 한다고 해도 부모·조부모까지 부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게다가 단카이 세대 자녀 중 60만명이 은둔형 외톨이처럼 집에만 있습니다. 오히려 은퇴한 부모들이 연금으로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일본 고령층 중 20%가 연금이 부족해 일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입니다.”
―하류 노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무엇인가요.
“아픈 것입니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고, 누군가의 간호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하류 노인들은 약도 아까워 한 회 분량을 여러 차례로 나눠 복용합니다. 사는 곳도 문제입니다. 제게 상담하러 오는 노인분 중 70%는 자신의 집이 아닌 임대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내는 월세는 6만~8만엔 선입니다. 연금 대부분이 방세로 나가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집을 장만했더라도 퇴직 후 세금 등의 유지비를 감당할 수 없어 도망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이런 이유들로 버려진 집들이 전체의 13%에 달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프랑스처럼 국가에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산이 부족하다면 세금을 올려서라도 해야 합니다. 프랑스 정부는 버려지는 빈집들을 매입해 빈곤층에 싼값으로 빌려주고 있습니다. 전 일본 정부에 빈집들을 매입해 공영 주택으로 만들어 한 달에 5000~1만엔 정도에 빌려주는 제도를 마련해 달라고 건의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노후의 삶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본인이 노후에 연금을 얼마나 받는지 자세히 살펴보고 그 금액에 맞춰 정년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일명 생활의 ‘다운사이징’입니다. 노후에는 어떤 일이 어떻게 발생할지 알 수 없습니다. 변수는 많은데 보호 장치는 거의 없습니다. 중년부터 비용의 리스크를 분산하며 노후 빈곤에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빈곤과 노인 빈곤 중 어떤 문제가 더욱 시급한가요.
“청년들도 필사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전문 복지사가 된 것도 대학 졸업 후 취직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지금 단카이 세대들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 쉬웠던 세대입니다. 일본 경제의 호황기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층은 평범한 삶 자체가 고비용 고위험입니다. 이들에게는 대학을 졸업해 취직을 한 후 가정을 꾸린다는 자체가 큰 도전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노인이 됐을 때는 지금보다 연금도 훨씬 적을 것입니다. 이들은 대부분의 생활을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사자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두 계층의 빈곤 중 어떤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고령층은 젊은 층의 미래입니다. 현재 일본의 젊은 층은 평범한 샐러리맨이 빈곤으로 떨어지는 걸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런 젊은 층에 아무리 소비하라고 외쳐 봐야 그럴 수가 없습니다. 결국 경제는 더욱 위축될 것입니다. 젊은 층에 밝은 미래를 보여줘야 그들도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 일본보다 심각
베이비부머 65세 첫 진입하는 4년 내에 문제 부각 예상
전문가들은 향후 4년 내에 한국에서도 ‘하류 노인’ 문제가 부각될 것으로 보고 있다.
1955~1963년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의 맏형 격인 1955년생이 2020년 65세에 진입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시기와 경제 불황이 겹친다면 한국의 하류 노인 문제는 일본보다 더욱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중국 경제위기 등이 가장 큰 변수다.
일반적으로 일본은 3층 보장체계(국민연금, 기업연금, 개인연금)가 보편화돼 있다. 하지만 한국은 기업연금이나 개인연금 상품이 그만큼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다. 국민연금 만으로 버티기엔 생활자금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역시 개혁하지 않는 한 이르면 2040년, 늦어도 2060년에는 고갈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의학의 발달로 노인의 수명은 현재 90~100세로 예상된다. 예상대로라면 베이비부머 맏형들은 연금이 고갈된 후에도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노인과 자녀가 함께 사는 비율은 전체의 28.4%다.(보건복지부 2014년 노인 실태 조사). 1994년 54.7%에 비해 절반 가까이 감소한 수치다.
2020년 하류 노인 시대가 오지 않더라도 한국의 노인 절대 다수는 이미 가난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65세 이상의 빈곤율은 48.6%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2위인 아일랜드(30.6%)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노인 자살률도 한국이 1위다. 현재 한국에서 노인 부부만 함께 생활하는 세대는 44.5%, 독거노인은 23.5%다.
국내 번역서를 감수한 전영수 한양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 상황은 한국보다 나은 편”이라며 “한국 사회는 하류 노인 양산 체제를 고루 갖췄다”고 말했다.
유럽은 ‘상류 노인’ 고민
연금소득이 근로소득보다 높아… 세대 간 갈등 주요 원인으로

유럽 노인들의 과도한 연금이 최근 유럽 경제의 저(低)성장과 함께 세대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유럽연합(EU) 통계기관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65세 이상 고령자의 수입은 노동자 평균 소득의 각각 103%, 102%에 달한다. 고령자의 연금 수입이 일반 노동자의 수입보다 더 많은 것이다. 이런 경향은 2008년 리먼 쇼크로 인한 금융위기 이후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 경제가 악화하면서 임금은 오르지 않은 반면, 과거에 만든 법체계에 따라 연금만 계속 올랐기 때문이다.
영국 고령층의 수입은 2008년만 하더라도 노동자 평균 소득의 78%였지만, 최근엔 89%까지 상승했다. 스페인과 프랑스도 2008년 각각 96%, 86% 수준이던 것이 최근에 100%를 넘어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고령층 세대의 연금 등을 포함한 소득이 노동인구 전체의 평균보다 높아지면 정부 연금 시스템의 세대별 불균형이 악화되고 젊은 노동자의 저임금 문제가 부각된다”며 “연금생활자가 노동인구에 과도한 짐을 지우고 있다”고 비판했다.